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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3

챕터12. 고대의 문화

고분 무덤은 굉장히 보수적인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아무리 개성과 다양성을 존중한다 해도 무덤의 형태까지는 반영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민족의 계통성을 찾을 수 있는 좋은 근거가 됩니다. 결론적으로 보면, 고구려와 백제의 무덤 형태는 비슷하지만 신라의 무덤 형태는 달랐습니다. 이를 통해 신라만 다른 계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백제는 고구려의 지배층이 내려와서 세운 나라였기 때문에 무덤의 양식도 자연스레 비슷해졌습니다. 고구려 초기의 무덤 형태는 돌무지무덤이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장군총입니다. 피라미드식으로 돌을 쌓아서 올린 형태인데, 돌 한 변의 길이가 1m가 넘는 것도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돌무지형식에서 굴식돌방무덤의 형태로 바뀌었습니다. 굴처럼 생겨서 문을 열고 들어가면, ..

챕터5. 신라 / 가야

신라 신라를 건국한 사람은 박혁거세입니다. 정치적으로는 매우 후진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왕도 돌아가면서 하다가 4세기가 돼서야 비로소 김 씨들에 의해서 왕위계승이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첫 번째가 내물 마립간입니다. 왜가 신라에 쳐들어왔을 때 고구려 광개토대왕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인물이 바로 내물 마립간입니다. 이때도 왕의 호칭은 쓰지 않았습니다. 신라의 변화와 개혁을 이끈 왕들은 6세기 지증왕과 법흥왕입니다. 지증왕은 국호를 신라로 칭하고 왕이란 칭호를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4세기에 체제를 갖췄던 고구려나 백제에 비해 매우 늦은 출발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의 울릉도 우산국도 정벌합니다. 법흥왕은 율령을 반포하고 불교를 공인했습니다. 이것은 고구려 전성기의 발판을 만든 소수림왕과의 업적과도 ..

챕터2. 여러 나라의 성장

고조선이 멸망한 후 부여, 고구려, 동예, 옥저, 삼한의 나라들이 생겨났습니다. 시험에서는 이 나라들의 위치가 중요합니다. 부여는 만주 쪽에 위치해 있었고, 고구려는 백두산과 만주 쪽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함경도 쪽 해안지대에는 옥저가 있었고, 강원도쪽은 동예가 있었습니다. 또 오늘날의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에는 마한 진한 변한 이 있었습니다. 마한은 지금의 서울과 충정도, 전라도 일대를 호령하고 있었습니다. 변한은 경상남도 쪽, 진한은 경상북도 쪽에 있었는데, 여기서 훗날 신라가 파생되어 만들어집니다. 이 나라들의 위치가 중요한 이유는 ㄱ,ㄴ,ㄷ,ㄹ로 가린 뒤, 각 나라의 특징을 묻는 문제가 출제되기 때문입니다. 2번 문제가 주로 이 파트에서 출제됩니다. 1번과 2번 문제는 틀려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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