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능력시험공부

챕터2. 여러 나라의 성장

퀸하트 2024. 2. 3.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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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이 멸망한 후 부여, 고구려, 동예, 옥저, 삼한의 나라들이 생겨났습니다. 시험에서는 이 나라들의 위치가 중요합니다.

여러나라의 성장 지도

부여는 만주 쪽에 위치해 있었고, 고구려는 백두산과 만주 쪽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함경도 쪽 해안지대에는 옥저가 있었고, 강원도쪽은 동예가 있었습니다. 또 오늘날의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에는 마한 진한 변한 이 있었습니다. 
마한은 지금의 서울과 충정도, 전라도 일대를 호령하고 있었습니다. 변한은 경상남도 쪽, 진한은 경상북도 쪽에 있었는데, 여기서 훗날 신라가 파생되어 만들어집니다.
이 나라들의 위치가 중요한 이유는 ㄱ,ㄴ,ㄷ,ㄹ로 가린 뒤, 각 나라의 특징을 묻는 문제가 출제되기 때문입니다. 2번 문제가 주로 이 파트에서 출제됩니다. 1번과 2번 문제는 틀려서는 안 됩니다. 이 파트는 2번 또는 3번 문제가 될 것입니다.

 

정치제도부터 살펴보면 부여는 사출도가 시험에 가장 잘 나옵니다. 동서남북에는 각각 지배층들이 있었는데, 이 지배층의 이름이 마가 우가 구가 저가였습니다. 마는 말, 우는 소, 구는 개, 저는 돼지를 뜻했습니다.  부여는 이처럼 왕이 가운데 있고, 지배층이 동서남북으로 나뉜 5 부족 연맹체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왕권이 약하고 각각의 자치권을 인정해 주었기 때문에 외부와 전쟁 일으킬 때만 왕이 중심이 되고, 평소에는 왕을 따르거나 하진 않았습니다. 평소에는 따로따로 살았고, 나라이름만 부여로 연결되었습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시대 때가 되면 이것이 하나로 뭉쳐집니다.
고구려도 같았습니다. 고구려를 세운 주몽이 부여에서 내려왔기 때문입니다. 고구려에는 제가 회의가 있었는데, 여러 가들이 모여서 하는 회의였습니다. 여기도 5 부족 연맹체제였습니다.

고구려 부여는 힘이 약해도 왕이 있었지만, 옥저와 동예는 왕이 없었습니다. 옥저와 동예를 고구려가 자꾸 괴롭혔기 때문입니다. 고구려는 산악지대였기 때문에 곡식과 해산물을 얻기 위해서는 약탈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신 옥저와 동예에는 군장들이 다스리고 있었는데, 이들을 읍군, 삼로라 불렀습니다.  
아래쪽 삼한은 소도란 곳이 있었습니다. 이 곳은 제사장, 즉 종교 지도자가 다스리는 지역으로 정치 지도자도 함부로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서울의 명동성당, 조계산 사찰에는 공권력이 함부로 행사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곳을 다스리는 것이 바로 천군이었고, 군장에는 신지와 읍차가 있었습니다.
청동기 시대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은 제정일치 사회였으나, 여기는 천군과 군장이 따로 있는 것을 보아 제정분리 사회였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천행사는 하늘에 지내는 제사를 말하는데, 이는 매우 중요했습니다. 기본적으로 농경사회이기도 했고, 그들을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 그런 행사들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같은 신을 두고 한 가족으로 묶어주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부여의 사출도 다음으로 제천행사도 시험에 매우 잘 나옵니다.
부여에는 영고가 있었는데, 영고의 고자는 북을 뜻하는 것으로 북을 치면서 신을 환영했습니다. 부영~고로 외우면 잘 외워집니다. 이 또한 시험에 잘 나옵니다. 고구려는 힘이 센 이미지인 만큼 군사동맹의 동맹으로 외우면 쉽습니다. 옥저에는 제천행사에 대한 기록이 없는 반면, 동예는 무천이 있었습니다. 무당이 하늘을 향해서 제사를 지내는 것입니다. 삼한은 계절제가 있었는데, 오늘날 5월에 있는 추석과도 같습니다.

 

그다음 결혼제도를 살펴보면, 고구려에는 서옥제가 있었습니다. 데릴사위개념으로 남자가 여자집에 와서 사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 역사에서는 조선 전기까지만 해도 장가간다는 표현이 일반적이었습니다. 남자가 여자집에 가서 사는 것입니다. 하지만 조선후기부터는 여자가 남자 집으로 가서 사는 시집 문화로 바뀌었습니다. 
옥저에는 민며느리제가 있었습니다. 장차 며느리로 삼기 위해 어린 소녀를 데려다 키운 뒤 아들과 혼인시키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노동력이 매우 중요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풍습을 살펴보면 부여에는 1 책 12 법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볼펜 1개를 훔쳤다면 12개로 갚는 것입니다. 옥저에는 가족공동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동예에는 책화가 있었는데, 이는 특히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책화는 다른 부족의 영역을 침범하면 소나 말 등으로 물어주는 풍습입니다.

 

경제를 살펴보면, 고구려는 약탈경제였습니다. 동예는 강원도 쪽에 있어 해산물이 많이 나왔고, 소금도 많이 나왔습니다. 이것은 옥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예의 특산물로는 단단한 활인 단궁, 과일나무 밑을 지날 수 있는 조랑말인 과하마, 바다표범의 가죽인 반어피 등이 있었습니다. 삼한은 벼농사가 발달되어 있었습니다.

 

핵심을 정리하자면, 정치파트에서는 부여의 사출도가 가장 잘 출제됩니다. 제전행사는 모두 기억해 두어야 하는데, 부여에는 영고, 고구려에는 동맹이 있었고, 동예는 무천, 삼한에는 계절제가 있었습니다. 결혼 파트에서는 고구려의 서옥제, 옥저의 민며느리제를, 풍습파트에서는 옥저의 가족공동묘, 동예에 책화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 두면 됩니다. 이 부분이 3번 문제로 출제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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