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능력시험공부

챕터8. 발해

퀸하트 2024. 2. 6.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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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를 건국한 사람은 대조영입니다. 고구려의 후예들과 함께 세운 나라였습니다. 발해의 역사에서는 3명의 왕을 기억해야 합니다. 무왕, 문왕 그리고 선왕입니다.

발해의 지도

초창기는 나당연합에 의해 고구려가 멸망했기 때문에 당나라와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한자로 싸울 무를 써서 무왕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에는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문왕시대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선왕 때는 발해의 최고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이때를 해동성국이라 불렀습니다. 동쪽에 있는 잘 나가는 나라라는 뜻입니다. 해동성국도 시험에 잘 출제됩니다.
무왕 때는 장문휴를 보내서 당나라의 산동반도를 선제 공격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긴장관계를 이루다가 문왕 때는 친선정책을 펼치게 되는데, 이때 당나라의 3성 6부 제도를 도입하였습니다. 나당연합에 의해서 고구려가 멸망했기 때문에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는 당나라뿐만 아니라 신라와도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문왕 때는 신라와도 교류하기 시작했습니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이 외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5경 15부 62주라는 거대한 지방 행정도 조직하였습니다. 
그런데 잘나가던 발해는 거란침입에 의해 하루아침에 망해버리게 됩니다. 이것은 아직도 역사적 미스터리로 남아있습니다. 
러시아와 중국의 역사서에서도 발해가 등장합니다.  상경 용천부 주작대로는 당나라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발해는 어느나라의 역사인지 논쟁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발해의 왕이 일본에 보낸 편지를 보면, '나 고려왕은~'이라는 문구가 정확히 등장합니다. 지배층들도 거의 고구려인들이었습니다. 또 온돌문화, 이불병좌상, 돌사자상, 석등 등의 발해 문화는 고구려의 문화와 매우 유사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당나라의 3성을 가져왔지만 저당성, 중대성, 선조성으로 이름을 바꿔 사용하였습니다. 6부도 중인의지예신으로 바꿈으로써 독자적인 모습을 유지하려고 하였습니다.
각 왕들의 연호도 기억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무왕의 연호는 인안, 문왕의 연호는 대흥, 선왕의 연호는 건흥이라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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