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능력시험공부

챕터14. 고려 후기

퀸하트 2024. 2. 11.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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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족의 시대가 지나가고 정권이 안정화되었습니다. 숙청되지 않았던 호족들이 기득권이 되었습니다. 그들을 문벌이라 불렀습니다. 이들은 가족끼리 결혼하는 폐쇄적인 통혼을 하였습니다. 또 그들의 자녀는 문벌가문이란 이유로 음서와 공음전을 통해 시험을 보지 않고도 벼슬자리를 얻고 땅도 받았습니다. 이같이 권력을 독식함에 따라 사회가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였고, 후에는 무신들에 의해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이자겸은 근친혼에 의해 엄청난 권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는 왕의 장인이자 왕의 외할아버지였습니다. 이자겸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왕이 되고자 하였습니다. 이것이 이자겸의 난입니다. 이때부터 문벌사회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독식하는 개경세력에 맞서 서경세력이 일어난 것입니다. 당시 문벌들은 안정된 사회 속에서 그 권력을 유지하고 싶었했지만 서경 세력은 독식하는 문벌들의 권력을 나눠갔길 원했습니다. 이념도 달랐습니다. 개경은 지위를 안정시키기 위해서 금나라(여진족)에게 사대하는 것을 찬성한 반면, 서경파 세력들은 금나라와 싸우자는 금 정벌정책을 주장했습니다. 또 묘청은 풍수지리설을 통해 개경의 기운이 다했다며 서경으로 도읍을 옮기자는 서경천도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유명한 문벌이었던 김부식에 의해 진압되었습니다. 김부식은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 된 역사서인 삼국사기의 저자입니다.  
이자겸의 난, 묘청의 서경천도 운동에 이어 세번째 사건이 터졌습니다. 개경에 있는 사람들끼리 독식하고 있으니 차별 받던 무신들이 일어났습니다. 이 사건이 무신정변입니다. 무신들이 차별받던 여러 일화가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무신이었던 정중부의 수염을 어린 문신이 촛불을 들이대서 태워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왕은 이 사건을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그 어린 문신이 김부식의 아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어느 날은 왕이 행차를 가는데, 연회를 베푸는 과정 속에서 군인들끼리 격투기를 벌이는 수박회를 열었습니다. 나이도 많고 직급도 높은 군인이 어린 군인에게 밀리자 한 문신이 나이 많은 군인의 뺨을 때렸습니다. 이러한 사건들이 계속해서 일어나자 무신들은 결국 폭발하게 되었습니다.

무신정변은 고려 전기와 후기를 나누는 분기점이 되었습니다. 이로써 무신들이 권력을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힘만 중시했던 무신들의 권력투쟁이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이 혼란기를 안정시킨 최초의 인물이 최충헌입니다. 그는 교정도감을 만들었고 그곳을 권력의 실세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 최우는 정방을 만들어 인사권을 좌지우지했습니다. 정치면에서는 교정도감과 정방을 만들어 안정시켰다면 군사적인 면에서는 도방과 삼별초를 만들어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게 하였습니다.
차별받던 무신들이 문신을 치는 하극상이 일어나자 이것을 본 백성들의 저항도 거세게 올라왔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김사미 효심의 난, 망이 망소이의 난입니다. 망이 망소이의 난은 공주명학소에서 일어났습니다. 공주명학소는 수공업을 중심으로 하는 특별행정구역이었습니다. 그리고 노비를 중심으로 신분해방을 주장하는 만적의 난도 일어났습니다. 당시 노비는 도구이자 재산에 불과했습니다. 이것을 당연시 여기던 사회에서 노비신분으로 신분차별을 주장한 것은 당시에는 상상도 못 했던 혁명적인 발언이었습니다.


내부적 문제 뿐안 아니라 외부의 침략도 있었습니다. 당시 몽골은 세계에서 가장 큰 대제국을 건설한 민족이었습니다. 서쪽 끝인 헝가리 쪽까지 갔다가 시선을 돌려 동쪽 끝에 있는 고려까지 온 것입니다. 강화도로 천도해서 싸웠지만 고려는 결국 항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원나라의 간섭기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는 왕의 이름에 원에게 충성한다는 뜻에서 충자가 붙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왕은 반드시 몽골의 여자와 결혼해야 했습니다. 몽골은 고려를 부마국, 즉 사위의 나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원 간섭기에는 영토도 축소되었고, 내정간섭이 이루어졌습니다. 또 몽골풍들이 유행했습니다. 몽골에도 고려의 문화들이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원의 권력에 빌붙어서 권문세족들이 부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원의 간섭기를 끝내고자 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공민왕입니다. 고려시대 때 제일 많이 나오는 왕을 꼽으라면, 전기는 광종, 후기는 공민왕입니다. 공민왕은 반원자주정책을 내세웠습니다. 먼저 쌍성총관부를 직접 공격해서 수복했습니다. 그리고 내정을 간섭했던 정도행성 이문소를 폐지시켰습니다. 또 유행했던 변발호복을 없앴고, 최우가 만들었던 정방과 권문세족의 기득권이었던 대농장도 폐지시켰습니다. 그리고 불법적으로 빼앗긴 토지와 백성들을 다시 돌려놓는 전민변정도감을 만들어 신돈을 그 자리에 앉혔습니다. 이것은 재정확보와 왕권강화에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우군으로 신진사대부들을 키웠습니다. 신진사대부는 당시 과거제도를 통해 관리에 올라간 사람들이 중심이 되었습니다. 이들을 등용하면서 권문세족을 쳤습니다. 그리고 훗날 이들 중 한 명인 최영과 이성계는 손을 잡고 새로운 나라 조선을 세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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