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
학교는 시대별로 매우 중요합니다. 고구려 소수림왕 때는 태학이 있었고, 통일신라 신문왕 때는 국학이 있었습니다. 발해에는 주자감이 있었고, 고려에는 국자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선에는 성균관이 있었습니다. 조선의 학교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중앙에는 성균관과 4부 학당이 있었습니다. 성균관은 고등교육을 담당했는데 이때의 고등교육은 오늘날 대학에 해당됩니다. 그리고 지방에는 향교가 있었습니다. 이곳들은 모두 국가에서 세운 학교들이었습니다. 향교에는 교수와 훈도가 파견돼서 가르쳤습니다. 16세기에는 서원이 발달했습니다. 조선을 건국할 때 대부분의 유학자들은 역성혁명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이 지방으로 낙향했는데, 그들은 지방에서 인재들을 양성하면서 자신의 세력을 키워나갔습니다. 그 인재를 양성한 곳이 서원이었습니다. 16세기에는 사림들이 권력을 장악했기 때문에 서원이 발달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학교는 교육기능만 담당했지만 조선의 학교는 조상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제사의 기능도 갖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은 백운동 서원입니다. 주세붕이 세웠습니다. 나중에는 이름을 받고 소수서원이 되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성리학을 처음으로 전달한 안향의 영장도 볼 수 있습니다.
16세기 성리학의 거두로는 퇴계이황과 율곡이이가 있습니다. 이황은 주자서절요와 성학십도를 집필하였습니다. 주자는 성리학을 집대성한 인물인데 주자서절요는 주자가 이야기한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성학십도는 성인 군자가 되기 위해서 어떤 공부를 해야 하는지 10가지의 그림으로 그린 것입니다. 성학십도는 시험에도 자주 출제됩니다. 이이는 이황보단 젊은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동호문답과 성학집요를 집필했습니다. 이이는 현실 개혁적인 방안들을 많이 냈습니다. 관직생활을 하면서 끊임없어 당시 왕이었던 선조에게 개혁을 요구했습니다. 만약 들어주지 않으면 바로 사표를 냈다고 하는데 무려 15번을 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만큼 그는 공직자리에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15세기는 성균관을 중심으로 한 학문이 발달하였고, 16세기는 서원이 많이 발달하였습니다.
역사
한 왕조가 출범하면 그 왕조는 앞에 있는 시대를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왜 이 새 왕조가 존재하게 되었는지 정당성을 부여하였습니다.
고려사는 기전체로 쓰여졌습니다. 광범위한 역사를 쓸 때는 왕의 입장, 신하의 입장 등 종합적으로 기록해야 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고려사절요는 편년체로 시간순으로 쓰였습니다. 많은 책들이 성종 때 완성되었습니다. 그중 하나인 동국통감은 고조선부터 고려까지를 담고 있습니다. 실록은 편년체로 기록되었습니다. 실록은 세계기록유산으로 그 기록들을 모아놓은 사초들을 춘추관에 모아서 작성했습니다. 실록을 쓰기 위해 왕의 옆에는 모든 것을 받아 적는 사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왕은 볼 수 없었습니다. 한 번은 세종이 아버지 태종 이방원이 사람을 많이 죽였기 때문에 사관들이 어떻게 평가했을지 궁금해하였습니다. 그래서 태종실록을 보자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세종의 오른팔이라고 하는 황희 정승마저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만류하였습니다. 이것이 선례가 되면 이후의 왕들도 계속해서 보고 싶어 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종도 끝끝내 보지 못하였습니다.
천문, 역법
왕은 하늘의 질서를 대리해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별자리의 운행 등 하늘의 질서를 꿰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만든 것이 천상열차분야지도입니다. 이것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방원 때 만들어졌습니다. 태조 이방원의 아들 이방원은 땅의 질서를 정리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현존하는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지도입니다. 동국여지승람은 성종 때 지어졌습니다. 그리고 중종 때는 확장판으로 신증동국여지슬람이 만들어졌습니다.
측우기, 자격루, 앙부일구 모두 세종 때 만들어졌습니다. 측우기는 비의 양을 재는 것이었습니다. 측우기의 지름은 현재 비의 양을 잴 때 쓰는 기구와도 크기가 비슷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당시에 가장 완벽한 지름의 크기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측우기로 빗물의 양을 잰 것을 모두 기록화하였는데, 이것은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기록 양을 보유한 것이 되었습니다. 자격루는 스스로 때린다는 뜻으로 지금의 알람시계와 같은 물시계입니다. 앙부일구는 해시계인데, 가마솥을 뒤집어 놓은 모양입니다. 주로 종로거리에 배치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시간을 알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당시 시간은 지배층들의 전유물이었습니다. 일반 백성들은 해가 뜨면 일하러 나가고 지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세종 때 만든 앙부일구 덕분에 백성들은 모두 시간을 갖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칠정산은 한양을 중심으로 한 역법으로 지금의 달력입니다. 그 이전까지는 중국의 역법을 빌려 썼습니다. 그런데 중국과 조선은 시차가 있었기 때문에 정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양중심의 달력을 처음 만든 것이었습니다. 이것으로 시간에 대한 주권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법, 윤리
정도전이 만들었던 조선 경국전을 토태도 성종 때 경국대전이 완성되었습니다. 삼강행실도는 세종 때 만들어졌습니다. 세종은 백성들이 유교적으로 부모님께 효도하고 어른들을 잘 섬기는 유교적인 세상을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데 백성들이 알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쉽게 알 수 있도록 충신, 효녀, 열녀에 대한 내용을 그림책으로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삼강행실도입니다. 하지만 삼강행실도에서도 그림에 대한 부연설명은 한자로 써야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보완하고자 훈민정음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중종은 연장자와 연소자 사이에 지켜야 할 규칙, 친구지간의 지켜야 할 규칙을 적은 이륜행실도를 집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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