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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능력시험공부 26

챕터25. 조선전기의 문화

유학 학교는 시대별로 매우 중요합니다. 고구려 소수림왕 때는 태학이 있었고, 통일신라 신문왕 때는 국학이 있었습니다. 발해에는 주자감이 있었고, 고려에는 국자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선에는 성균관이 있었습니다. 조선의 학교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중앙에는 성균관과 4부 학당이 있었습니다. 성균관은 고등교육을 담당했는데 이때의 고등교육은 오늘날 대학에 해당됩니다. 그리고 지방에는 향교가 있었습니다. 이곳들은 모두 국가에서 세운 학교들이었습니다. 향교에는 교수와 훈도가 파견돼서 가르쳤습니다. 16세기에는 서원이 발달했습니다. 조선을 건국할 때 대부분의 유학자들은 역성혁명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이 지방으로 낙향했는데, 그들은 지방에서 인재들을 양성하면서 자신의 세력을 키워나갔습니다. 그 인..

챕터24. 조선의 사회

조선 후기 제주도에서 대단한 여성이 등장했습니다. 그 여성의 이름은 김만덕이었습니다. 그녀는 조선시대 때 유명한 여성 경영인이었습니다. 육지에서 오는 곡물들을 제주도에서 팔고, 제주에서 나는 해산물들을 육지에 팔면서 거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주에 가뭄이 왔을 때 이제까지 벌었던 돈을 모두 풀어서 육지에서 쌀을 사 와 제주도민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 김만덕의 이야기를 듣고 정조가 상을 주기 위해 소원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김만덕은 두 가지를 말하였습니다. 첫 번째는 임금을 만나는 것이고, 두 번째는 금강산을 가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그 당시 아녀자가 임금을 만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제주도 여성들은 출육금지령이 있어 제주도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금강산은 양반들..

챕터23. 조선의 경제

한국사능력시험에서는 경제와 사회 파트는 많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너무 비중을 두고 공부할 필요는 없습니다. 나온다면 주로 세법이 나옵니다. 세금 체제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기억해 두면 됩니다. 농사짓는 사람들은 크게 3가지 세금을 내야 했습니다. 전세, 공납, 역이 바로 그것입니다. 전세는 토지에서 나오는 생산량의 일부를 내는 것이고, 공납은 그 지역의 특산물을 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역은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어떤 기준으로 냈는지는 시대에 따라서 달라졌습니다. 지금부터 그 달라진 과정을 알아보겠습니다. 토지제도와 세금제도의 변화 전세 중 하나인 과전법은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기 이전에 위화도 회군을 통해서 최영을 제거하고 권력을 장악한 후 경제력을 장악하기..

챕터22. 조선 후기정치

조선전기와 조선후기는 1592년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당시 조선의 외교는 사대와 교린이었습니다. 조선 전기만 해도 중국의 명나라가 있었습니다.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로써 정통인 중국을 섬기는 것을 당연시 여겼습니다. 그래서 큰 나라를 섬긴다는 의미로 사대와 조공무역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웃나라들과는 교린정책을 펼치며 사이좋게 지냈습니다. 대표적인 이웃나라로 여진과 일본이 있었습니다. 강경책과 회유책을 고루 썼는데, 세종 때는 4군 6진을 개척하며 여진족의 땅을 빼앗아 영토를 넓히는 반면, 그들이 원하는 것이 쌀과 곡식임으로 무역소를 설치해서 이것을 주기도 하였습니다. 일본도 쓰시마섬을 정벌했지만 얼마 정도는 교역을 하겠다는 뜻에서 3포를 개항했습니다. 그런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권력을 ..

챕터21. 조선 후기 정치

15세기를 이끌고 있었던 역성혁명파의 후손들이 훈구파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결국 사림에 의해서 교체가 되었고, 16세기 이후부터는 사림들이 주도세력으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림들도 권력을 장악하게 되면서 여러 파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사림의 인원은 많은데 반해 중앙 관직의 수는 한정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서로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뭉치게 되었는데, 이것을 붕당이라 불렀습니다. 대표적인 당은 동인당과 서인당이 있었습니다. 동인당의 우두머리는 김효원이었습니다. 그가 한양에서 동쪽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동인이라 하였습니다. 서인당의 우두머리는 심의겸으로 서쪽에서 살고 있어서 서인이라 불렀습니다. 이들은 인사권을 쥐고 있는 자리를 두고 권력투쟁을 벌였습니다.인사권은 이조에 ..

챕터20. 조선 전기의 정치

태조부터 출발해서 계속해서 조직을 정비하였고, 성종 때 경국대전이 완성되면서 조선이 안정화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100년을 가지 못 했습니다. 15세기말, 기득권 세력들은 점점 초심을 잃기 시작했습니다. 세조는 그의 조카인 단종을 죽이고, 계유정난을 통해 불법적으로 권력을 장악하였습니다. 그렇다 보니 세조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았고, 세조는 자신들과 함께 난을 일으켰던 공신들만 의지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의 부정부패도 만연하였습니다. 하지만 세조는 이들을 잘 벌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을 훈구파라 불렀습니다. 훈구파 세력이 주도적으로 권력을 장악했지만, 사림들도 서서히 3사를 장악해 가고 있었습니다. 조선 3사는 사간원, 사헌부, 홍문관으로 언론의 기능을 담당하였습니다. 훈구파들은 이들을 견제하였고..

챕터19. 조선의 건국과 체제정비

조선은 근세로 분류합니다. 삼국과 남북극 시대는 고대였고, 고려는 중세였습니다. 중세 고려는 고대의 폐쇄적인 신분제도에서 벗어나 광종 때 과거제를 실시하면서 실력을 인정해 주는 사회였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고대와는 다른 사회였습니다. 그래서 중세가 되었습니다. 조선이 근세가 된 것도 이와 같습니다. 조선시대는 중세 고려에 비해 좀 더 실력이 중심 되는 사회였습니다. 중세 고려는 여전히 음서, 공음전과 같은 신분제적인 질서가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면 과거시험을 안 보더라도 관직에 나갈 수 있는 길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근세 조선은 과거에 합격하지 못하면 조선의 지배층으로 인정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훨씬 더 실력이 존중되는 사회였습니다. 조선시대도 조선전기와 조선후기로 나누어 볼 ..

챕터18. 고려의 문화

불상 이름을 일일이 다 외우기보다 사진을 보고 고려시대임을 알 수 있으면 됩니다. 고려시대 초기에는 철불이 유행했습니다. 왜 철로 만든 불상이 유행했을까요? 전쟁이 끝났기 때문입니다. 전쟁 때 사용했던 무기들을 녹여서 불상을 만들었습니다. 대표적인 불상으로 하남 하사창동 철조 석가여래좌상이 있습니다. 또 대형 석불도 유행했습니다. 논산 관촉사 석조 미륵보살입상, 파주 용미리 마애이불입상, 안동 이천동 마애여래입상이 고려 때 만들어진 대형 석불들입니다. 마애여래입상은 바위 위에 얼굴만 얹어놨을 정도로 고려시대 불상들은 이전시대보다 매우 파격적이고 개성적인 것이 특징입니다. 고려 중기에는 석굴암 본존불과 매우 유사한 불상이 만들어졌습니다. 영주 부석사에 있는 소조 아미타여래좌상입니다. 부석사는 의상이 만든 ..

챕터17. 고려의 문화(유학, 역사서)

문벌시대가 되면서 국가가 운영하는 관학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관학은 인기가 없었습니다. 사립학교가 인기가 더 많았기 때문입니다. 사립에서 시험도 더 많이 보고, 과거시험도 더 많이 합격시켰습니다. 그래서 광종 때부터 시작했던 과거에 합격하기 위해 사람들은 사립학교에 더 가고 싶어 했습니다. 최고의 사립은 최충이 세운 9제 학당이었습니다. 이 학당 출신들을 문헌공도라 불렀습니다. 국가에서는 사립학교가 더 인기 많은 것을 보고, 공교육을 강화시키기 위해서 장학재단인 양현고와 전문 7재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사립학교가 더 인기가 많았습니다. 무신시대에 접어들어서는 칼의 시대였기 때문에 유학이 위축되었습니다. 그러다 고려말기가 되면서 원 간섭기 때 원에 빌붙어 권문세족들이 성장했는데, 이들은 신진사..

챕터16. 고려의 경제,사회

고려의 경제 사회는 시험에서 1문제 정도 출제됩니다. 시험에 자주 출제되는 핵심 용어들을 먼저 살펴보면, 고려의 토지제도 전시과, 고려의 국제무역항 벽란도, 고려의 화폐 활구와 해동통보, 고려의 물가조정기구 상평창 그리고 고려의 상행위 감독기구 경시서가 있습니다. 토지제도 고려의 토지제도에는 역분전이 있습니다. 고려 건국에 공을 세운 조신, 군사 등에게 임품과 공로에 기준을 두고 지급하였습니다. 그리고 경종 때는 전시과가 만들어졌습니다. 전시과는 고려시대 문무 관리들에게 지급하던 토지제도로 그 지위에 따라 전토와 시지를 지급하였습니다. 전시과의 전은 토지를 뜻하고, 시는 임야를 뜻합니다. 임야는 땔감을 얻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전시과는 죽거나 관직에서 물러나면 나라에게 토지를 반납해야 했지만 고위관리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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