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벌시대가 되면서 국가가 운영하는 관학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관학은 인기가 없었습니다. 사립학교가 인기가 더 많았기 때문입니다. 사립에서 시험도 더 많이 보고, 과거시험도 더 많이 합격시켰습니다. 그래서 광종 때부터 시작했던 과거에 합격하기 위해 사람들은 사립학교에 더 가고 싶어 했습니다. 최고의 사립은 최충이 세운 9제 학당이었습니다. 이 학당 출신들을 문헌공도라 불렀습니다. 국가에서는 사립학교가 더 인기 많은 것을 보고, 공교육을 강화시키기 위해서 장학재단인 양현고와 전문 7재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사립학교가 더 인기가 많았습니다. 무신시대에 접어들어서는 칼의 시대였기 때문에 유학이 위축되었습니다. 그러다 고려말기가 되면서 원 간섭기 때 원에 빌붙어 권문세족들이 성장했는데, 이들은 신진사대부의 공격을 받으면서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이 신진사대부들은 성리학을 수용한 세력들이었습니다. 성리학을 소개한 사람은 안향이라는 원나라 사람이었는데, 그것을 고려에 소개한 사람들이 바로 신진사대부들이었습니다. 이전의 훈고학은 철학적인 성격보다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방법론에 집중했다면 성리학은 인간의 심성과 우주의 원리가 무엇인지를 찾아나갔습니다. 특히 신진사대부에 영향을 많이 끼쳤던 인물로 이재현이 있습니다. 그는 원나라에 자주 갔다 오며, 독서당인 만권당을 만들고 시화문학서이자 잡록집인 역옹패설을 썼습니다.
역사서들을 살펴보면, 고려시대에도 조선왕조 실록처럼 실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전해지고 있진 않습니다. 문벌시대 때 김부식에 의해 삼국사기가 편찬되었습니다. 삼국사기는 현존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역사서입니다. 삼국사기는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역사가 담겨있지만 신라에 비해 고구려와 백제의 역사는 많이 축소되어 기록되어 있습니다. 김부식은 경주 김씨로 신라 왕족의 후손이었기 때문에 삼국사기도 신라중심으로 쓰여졌습니다. 그리고 왕과 그 시대를 살았던 유명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전체 서술의 형식으로 기록하였습니다.
무신정변시대 때는 각훈의 해동고승전이 있었습니다. 해동고승전은 동쪽에 있는 유명한 스님들의 이야기를 모아놓은 글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규보는 고구려를 세운 주몽의 이야기를 동명왕편에 기록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원 간섭기로 들어오면서 일연의 삼국유사가 나왔습니다. 김부식은 유학자였습니다. 그래서 고구려 백제 신라의 역사를 쓸 때 기적 같은 일들을 쓰지 않았습니다. 유학자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은 믿지 않고, 현상에서 가능한 것들만 믿었기 때문입니다. 김부식이 기록하지 않아 버려진 역사들을 모아 놓은 것이 바로 삼국유사였습니다. 그래서 삼국유사에는 삼국사기와 달리 온갖 기적 같은 일들이 많이 쓰여있었습니다. 이승휴의 제왕운기와 더불어 단군신화도 이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재현의 사략은 이재현이 신진사대부였기 때문에 성리학적 사관으로 서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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